"장마철이 지나고 이불엔 버섯이 돋아났다"
평소에도 습기가 많아 곰팡이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긴 했지만
버섯까지 자라날 줄은 정말 몰랐다.
반지하 원룸.
시설이나 방 크기에 비해 저렴한 가격
여기다 싶어 급히 계약을 한 게 문제였다.
하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이 가격의 다른 집들 중
한 집은 화장실이 문 밖 30m 거리에 있었고
또 다른 집은 온수를 틀려면 최소 40분은 기다려야 했고
어떤 집은 집안에 창문이 하나도 없기도 했다.
창문이 없던 집은 아날로그 사진작가가 좋아했다나 뭐라나
하여간 습기나 곰팡이 정도는 아직 젊으니까
1년만 참다가 졸업하고 취직해서 다른 집으로 이사할 맘으로 들어왔는데
이불 사이에서 버섯이 자라날 줄은 정말 예측조차 못했다.
한두 개도 아니고 버섯 포자가 퍼져서 이불 곳곳에
자라나기 시작한 것 같은데, 그냥 터는 정도로는 해결이 안 될 것 같다.
일단 학교부터 다녀와서
청소를 하거나 해야 할 것 같다.
원래 내 꿈은 셰프였다.
티브이에 나오는 수많은 유명 요리사들
화려한 손기술과, 요리를 먹었을 때 손님들의 황홀한 표정
그런 모습에 끌려 호텔조리학과를 들어왔지만
여기는 내가 추구하려는 방향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라
나는 다들 열정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교수님들도 동기들도 그저 내 자취방 자라나는 버섯들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언젠가 방송에서 요리는 반 발자국만 앞서가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내 요리는 이들에게 너무 앞서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뒤쳐지는 사람들을 위해 내 걸음을 늦춰줄 생각도 없다.
언젠가 티브이에 나가 내 화려한 퍼포먼스와 뛰어난 스킬들을 뽐내며 만든 요리가
인정받을 날이 올 것이다.
공부를 조금만 더 열심히 했다면 이런 찌질한 대학 말고
좀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교수들도 동기들도 나를 이해해주고 인정해줬겠지
지루하고 뻔한 수업을 듣는 것도 신물이 난다.
저런 걸 듣고 있느니 그냥 집에 가서 이불 청소나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잠깐 쉬는 시간에
이불 청소나 할 겸 짐을 챙겨 자취방으로 그냥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고 불을 켰을때 난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대체 이게 뭘까...
오전만 해도 이불 위로 작게 피어 올라온 한송이의 버섯뿐이었는데,
이불 가득 버섯들이 빽빽하게 자라나 있었다.
이건 도저히 이불을 빨거나 털어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냥 이불을 버리기로 마음을 먹고 이불을 들어 올려 밖으로 들어내려는데
신기하게도 신선한 버섯의 향긋한 냄새가 온 방을 휘감았다.
지금껏 사용해 본 그 어떠한 버섯 재료들에서도 맡아본 적 없는 강한 향이었다.
대체 이 버섯의 정체는 뭘까?
인터넷을 뒤져보니 버섯의 정체는 송이버섯으로 나왔다.
혹시 몰라 버섯 한송이를 채취해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려보았지만
송이버섯이 틀림없다는 대답뿐이었다.
만약 송이버섯이라면 이건 자연산 송이버섯이 되려나? (양식은 아니잖아..)
인터넷에 자연산 송이버섯의 가격을 검색해 보니
시세는 대략 1kg당 15만 원가량은 받을 수 있는 걸로 나온다.
만약 정말 송이버섯이라면 이것만 잘 재배해서 팔아도
최소한 등록금은 건질 것 같았다.
하지만 혹시라도 송이버섯이 아니거나 독이 있을지 모르니
채취한 버섯을 조금만 잘라 빻은 뒤
잇몸에 비벼보고, 혀끝으로 맛을 확인해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송이버섯의 맛과 향 그대로였다.
조금 잘라서 삼켜본 뒤 1시간 정도를 기다려 보았지만
특별히 배가 아프다거나, 머리가 어지럽다거나 하는 현상도 없었다.
버섯을 몇 송이 채취해 손질 한 뒤
지난 학기 배웠던 버섯 요리법을 활용해 송이버섯 볶음을 만들어 보았다.
풍기는 향과 빛깔 질감과 찢어지는 버섯의 결
모두가 송이버섯임에 틀림이 없었다.
요리를 조금 맛보았다.
여태껏 내가 만든 모든 요리 중 단연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맛과 향이 뛰어났다.
자연산 송이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왜 그렇게 비싼 돈을 내고 버섯 따위를 사 먹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그런 맛이었다.
"버섯 따위라니 이건 버섯님이야"
난 만들어둔 요리를 순식간에 다 해치워버렸고
입안 가득 퍼진 송이버섯의 향긋함에 취해
정말 오랜만에 기분 좋게 꿀잠을 잘 수 있었다.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도 아무 이상 없이 건강하다.
판매를 해도 관계가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우선 판매에 앞서 이 송이버섯으로 요리를 만들어
그동안 날 무시하고 내 요리를 이해하지 못하던 교수님과 동기들을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이불 송이로 만든 버섯 요리는 호평일색이었다.
동기들은 레시피를 받아 적기 바빴고
교수님들은 이제야 나를 조금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버섯을 살펴보기 바빴다.
교수님은 수업이 끝나고 나를 따로 불러내서
독특하고 창의적인 요리였다는 칭찬을 해주셨다
그리고 내 버섯 요리가 이미 대학생 수준을 뛰어넘었으니
전국 창작요리 경연대회에 나를 추천해 주신다고 하셨다.
교수실을 나와 집으로 오는 길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내 송이버섯들이 갑자기 시들어 버리진 않았을까?
여전히 방에서 잘 자라고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급히 집으로 뛰어가 보았지만
송이버섯들은 아무 이상 없이 잘 자라고 있었다.
습기 차고 해가 들지 않는 이 좁고 지저분한 원룸이
내게 이런 큰 선물을 안겨다 줄지 몰랐다.
지금의 이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잠시 누워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하루아침에 바뀐 내 평가가 믿을 수 없이 기쁘고 행복했다.
눈을 뜨고 교수님께 메시지를 남겼다.
"정말 정말 열심히 해서 실망시켜드리지 않는 제자가 되겠습니다."
이불 위 내 사랑스러운 버섯 한송이를 더 채취해
한입만 베어 먹어 보았다.
신록의 응축된 향기가 요리를 하지 않은 버섯에서도 느껴졌다.
이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더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을까...
내 실력과 재료가 하나로 만나는 날이 이런 식으로 찾아 올진 몰랐다.
교수님께 답장이 왔다.
"열심히 하자"
단 한 번도 내게는 관심도 없으시던 교수님이다.
여러 감정들이 오갔지만 그래도 기쁜 마음이 가장 컸다.
나는 행복한 마음을 간직한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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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원룸
udonism.postyp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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