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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 _ 단편소설

우동이즘 단편소설 시리즈 <개인버스>

by 우동이즘 - Udonism 2020.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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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버스>

 

 

"아이의 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슬픔에 찬 눈을 가진 아이였다" 

 

그 아이는 차비가 없는지 버스에 오르기 전 나의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이곳은 시골길 손님이라곤 하루에 1명이 있을까 말까 한 한적한 노선이지만 

언제까지고 소년을 기다려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일단 소년에게 타라고 한 뒤 다시 버스를 출발시켰다. 

 

"언제까지 그렇게 서있을 거야!! 빨리 자리에 앉아!!" 

 

행여 소년의 입에서 차비가 없어서 죄송하다는 말이 나올까 싶어 

괜한 역정을 냈고, 소년은 운전석 바로 뒷자리 살금살금 눈처럼 살포시 착석했다. 

 

소년의 행색은 아주 말끔해 보였다. 

 

집을 나왔다거나 가난해 보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마냥 부집 집에서 자라난 아이라 보기엔 

그늘이 가득한, 뭔가 신경 쓰이게 만드는 아이였다. 

 

내 뒤에 앉아 한참 동안이나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년은 

버스에 오른 지 7 정거장이 지나서야 뭔가를 결심한 듯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시골길의 7 정거장은 도시와는 다르다. 

한정거장이 거리로만 치자면 도시 정거장 의 서너 배는 되는 거리로 되어있고 

소년이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한 건 

주위에 인가라고는 없는 산 중턱 정거장이 지나서였을 때쯤이었다. 

 

소년이 가방에서 뭘 꺼내는 걸까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불안하게 달리는 도중에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내 아들이 아직까지 살아있었다면 딱 저 정도 나이였을 거다. 

 

몇 해 전 겨울 이맘때쯤 아내와 아들을 태우고 달리던 버스는 

얼어붙은 비탈길 방향을 제어하지 못하고 낭떠러지 아래로 곤두박질쳤고 

버스에 탄 손님 모두가 그 자리에서 참사를 당했다.

 

눈 덮인 하얀 겨울산 참사 현장은 비현실적으로 까맣게 그을려있었고 

그 흔적은 마치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은 검정이었다. 

 

소년의 가방에서 나온 건 붉은색 저금통이었다. 

저금통은 동전과 지폐가 제법 들어있는 듯 묵직한 소리가 났고 

소년은 한참 동안이나 붉은색 저금통을 만지작 거리며 바라보며 뭔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 산은 내게 많은걸 주었고 모든 걸 빼앗아 갔다. 

배움이 짧은 난 이 산을 가로지르는 시내버스기사로 일을 시작했고 

아침저녁으로 버스의 종점에서 종점을 하루에 한 번씩 왕복하는 그녀를 만나 결혼까지 성공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땐 너무 기뻐서 산을 오르내리는 버스의 속도를 

주체하지 못해, 뒷자리에 탄 할아버지가 역정을 내기도 하셨고 

몇 정거장을 정차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려 회사에 몇 번의 걱정 섞인 불만의 클레임이 들어오기도 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은 우리 회사 버스와 같은 하늘색 버스였고 

아이는 아빠처럼 버스를 모는 게 자신의 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끔씩 손님이 아내와 아이뿐일 때는 마치 우리 가족의 캠핑카라도 된 듯 

이야기 꽃을 피우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가끔 버스가 올라가지 않는 산의 비탈길에 사시는 할머니가 타시면 

버스로 할머니를 온 가족이 함께 모셔다 드리기도 했고 

산아래에서 산고 양이나 다람쥐가 발견될 때면 버스에 태워 산 중턱에 내려주기도 했다. 

 

아내는 내가 매일 달리는 이 길이 조금 더 예뻤으면 좋겠다며 

어느 날에는 퇴근길에 꽃씨를 잔뜩 사 왔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문을 열고 아내는 

헨젤과 그레텔이라도 된 마냥 버스 창밖으로 꽃씨를 조금씩 뿌렸고 

 

"내년 이맘때쯤엔 뿌린 씨들 중에 10%만 피어나도 길이 예뻐질 거예요 그렇죠?" 

 

아내가 활짝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리고 그다음 해 아내와 아이는 내 곁을 떠났다.

 

아내가 떠난 뒤 봄에는 유채꽃이 여름엔 붓꽃 가을엔 코스모스가 

내 출퇴근길을 수놓았다. 

 

출퇴근길 아내가 선물해준 그 꽃들을 바라보는 게 유일하게 붙들고 있던 

내 삶의 마지막 끈이었다 

 

오늘은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함박눈이 내렸고 

마지막까지 피어있던 코스모스 한송이마저 모두 

눈 이불을 덮고 깊은 겨울잠에 들어가 버렸다. 

 

"짤랑짤랑 콰르르르르륵 짤랑"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이 소년이 저금통의 모든 돈을 버스요금함 속에 쏟아부었다. 

 

"제가 가진 돈은 이게 다예요..." 

"저희 아빠 있는 곳으로 가주시면 안돼요?" 

소년이 말했다. 

 

아빠가 어디 계신지 물어보았지만 

소년은 어두운 표정으로 답할 뿐이었다. 

 

소년이 가방에서 하늘색 버스 장난감 하나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우리 아들이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하늘색 버스 장난감이었다. 

 

회사 창립 기념일 날 모든 기사들에게 보너스와 함께 나왔던 회사 기념품. 

소년의 아빠는 작년 이맘때쯤 버스를 몰러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동안 할머니와 살고 있었지만 할머니가 3일 전 돌아가셔서 

이제는 가끔 와서 돌봐주시던 사회복지사 아줌마와 함께 다른 곳으로 

가서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소년은 자신이 가진 모든 돈을 들고 나와 무작정 버스가 다니는 길로 나와 

아빠가 몰던 버스와 같은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이 버스의 종점에서 아빠가 기다리고 있을 거 같아서요" 

 

<계속>

 

 

개인 버스

"아이의 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슬픔에 찬 눈을 가진 아이였다"  그 아이는 차비가 없는지 버스에 오르기 전 나의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이곳은 시골길 손님이라곤 하루에 1명이 있을까 말까 한 한적한 노선이지만  언제까지고 소년을 기다려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일단 소년에게 타라고 한 뒤 다시 버스를 출발시켰다.  "언제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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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이즘 스토리텔링 - 기묘한 이야기 (단편선)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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