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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 _ 단편소설

우동이즘 단편소설 시리즈 <울트라 슈퍼문>

by 우동이즘 - Udonism 2020.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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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슈퍼문>

 

 

뉴스에서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너무 배가 고파 식당에 들어가려던 중이었다.

 

몇 달 전 달의 뒷면에 소행성이 충돌했고,

그때의 충격으로 인해 달이 조금씩 지구와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내일이면 달과 지구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져

지구 중력의 영향을 받은 달이 붕괴되어 지구로 흩뿌려진다는 것이었다.

 

최근 달은 하늘의 1/10을 덮을 만큼 커져있긴 했었지만

미사일로 충격을 가해 다시 밀어내거나, 추진연료를 가득 채운 로켓을 새로 띄워 조금씩 밀어낼 수 있다고 하는 등 낙관적인 뉴스만 보아오던 터라 큰 위기감은 없었다.

 

밖으로 나와 사람들이 모여있는 광장의 커다란 스크린 앞에 도착했다.

스크린에선 달의 접근을 현재의 기술로는 막을 수가 없었던 거라,

전 세계의 대공황 사태를 막기 위해 그동안 비밀로 부쳐왔던 거라는 말을 했다.

 

"부자들이나 국회의원 놈들은 지하벙커에 숨어서 자기들끼리 살아남겠지 더러운 세상"

분노에 찬 누군가 스크린에 돌을 던지며 외쳤다.

 

놀란 마음에 무슨 말이 든 할 수는 있겠지만 저건 모르는 소리다.

달은 지구의 1/4 크기이고 달의 파편이 지구에 떨어진다면 어떠한 생명체도 살아남을 수 없다.

지구는 몇백 몇천 년 동안 불타올라 죽음의 행성으로 변할 것이다.

 

적어도 마흔까지는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불과 서른이 조금 넘은 나이 삶을 마무리해야 하는구나.

 

 

달은 아주 조금씩 우리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왔었다.

하지만 움직이기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천문학자들이 눈치를 챘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전 세계 사람들이 알아차렸다.

뉴스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달에 대한 얘기만 흘러나왔다.

 

뉴스에서는 안전할 것이라는 말뿐이었지만

인터넷 개인방송들에선 각종 전문가들이 나와 지구의 멸망에 대한 분석을 디테일하게 제시하기도 했다.

 

"가짜 선동 뉴스 제작자를 처벌하라!"

 

사람들은 지구의 멸망을 믿지 않으려 했다.

개인방송에 올라오는 지구종말에 대한 뉴스들은 모두 가짜 선전지 취급당했고,

영상을 올리는 채널들은 모두 폭파되거나 비추천과 악플 테러를 당했다.

 

젊은 연인들은 세계 각지에서 커다란 달을 배경으로 인증숏을 찍어 올리는 것이

일종의 문화처럼 번져 다시 오지 않을 커다란 울트라 슈퍼문을 즐겼다.

 

"오빠 우리도 한강에서 달 배경으로 사진 한번 찍자"

 

달이 커지던 말던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매일 내 일만 묵묵히 하는 나를 보며

여자 친구가 답답한 듯 말을 걸었다.

 

 

사실 난 정말 달이 커지던 말던 관심이 없었다.

뉴스에선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고,

만약 인터넷 전문가들 말대로 문제가 있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달이 평소의 1/10 정도까지 커졌을 땐 다른 무엇보다

그 압도적인 크기에 짓눌려 무서운 맘이 들기도 했다.

가능하면 더 오래 살고 싶은 게 모든 생명체들의 본능이라

내가 대적할 수 없는 압도적인 무엇인가에 느끼는 감정은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끼니를 때운다면 여자 친구 지아와 먹고 싶었다.

맛있는 걸 먹을 때의 지아가 짓던 맑은 웃음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보고 싶었다.

 

"그런데 세상이 이렇게 되었는데 맛있는 걸 먹을 곳이 있을까?"

 

나는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론 전화는 걸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위 모든 사람이 전화기를 만지고 있었고

모두가 전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당황해하고 있었다.

 

나는 원래 내일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내 일상에는 변화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일 지구가 멸망하는 것과, 내일 내가 죽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었다.

 

배가 고파도 문을 연 음식점이 없었고,

전화를 하고 싶어도 전화를 할 수 없었고,

어딘가를 가려고 해도 교통이 마비되어 아무 곳도 갈 수 없었다.

 

뉴스가 방송되고 불과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세상은 모조리 엉키고 꼬여 엉망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가족은 멀리 살고 있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고 싶었지만

여자 친구는 부모님과 동생을 아끼는 사람이라 나보다 가족을 더 우선시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자 친구를 만나러 걸어가는 것 외에는 없었다.

 

항상 우리가 함께 만나던 카페로 갈까 하다가, 이 판국에 카페의 문이 열려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해

여자 친구의 집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길가에는 젊은 여성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이 광기를 띈 남자들뿐이었고,

편의점이나 커다란 대형마트 앞에는 이미 뭔가를 가득 든 면도가 잘되어 깔끔한 차림의 남자들과

어머니뻘로 보이는 아주머니들 뿐이었다.

마비된 도로 위에도 가끔 곡예주행을 하는 오토바이들 외에 움직이는 기계는 없었다.

 

길치끼가 있는 나는 모바일 지도를 이용하지 않으면 길을 제대로 잘 찾지 못하는 편이라

통신망이 마비된 지금 목적지까지 잘 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했지만,

여전히 친절한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어 물어물어 목적지로 가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할머니 해장국이요? 이 길로 쭉 가시면 저기 앞에 큰 불나고 있는 곳 보이시죠? 거기쯤이에요"

"발리 성인 나이트요? 이 시국에 클럽 조지 시게요? 하하 농담이에요 저기 지금 사람 뛰어내리는 빌딩 보이시죠? 네 그 빌딩 앞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돼요"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흥분되어 있는데 친절한 사람들은 지나칠 정도로 차분하고 안정되어 보였다.

그래서 오히려 손쉽게 그들을 찾을 수 있었고 길을 물어볼 수 있었지만

그들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걱정이 되지 않는 걸까?

아직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현실감각이 없다는 게 맞는 표현일까, 아니면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는 게 맞는 표현일까

평소에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것 때문인 걸까.

거리 위의 모든 친절한 사람들은 어쩌면 모두 나처럼 어느 부분에서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공감능력이 강한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이 시점에서도 저 냉면집 앞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서도 측은지심이 들까?

불과 100m만 걸어가도 죽어가거나 이미 죽은 사람을 한두 명은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에게 모조리 측은지심을 느끼고 공감을 한다면 나 또한 불안한 마음에 이성을 잃은 저들처럼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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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슈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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