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롯데시네마에서 디즈니&픽사 영화 소울을 봤다.
코시국에 머선짓이냐? 라고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만,
제주는 몇주째 감염자가 0명수준이고 가끔 1명 생길까 말까라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안전하다.
게다가 상영관에서 함께 본 사람은 나 포함 총 5명.
소울은 명작이다.
영화라는 매체 특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는 명작.
"무엇으로 나는 살아가는가?"
"그리고 행복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최근 계속 달고 살았드랬다.
이런건 인간의 실존에 대한 물음이라 답이 있을리 없다.
타인이 내리는 순간의 답을 들으며 더듬더듬 내 답을 찾아 헤매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더듬거릴만한 벽이 하나 생기는 것 같아 늘 그 물음을 달고 살았었다.
소울은 답을 내리는 영화는 아니다.
주인공의 여정을 통해 어떤 삶을 살면 행복할지를 생각나게 해주는 이야기다.
물론 영화를 보는내내 난 언제나처럼 또 생각의 늪에 빠져들어가 버렸지만,
이런건 다시 한번 더 보거나 그래도 안되면 한번 더 보면 생각을 제거하고 볼 수 있긴 하다.
그래서 명작은 못해도 5번 이상씩은 보게 되는 것 같다.
주인공 조가 원하던 것은 유명 공연장에서의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원하는 것은 원하던 것일뿐, 그 것을 얻은뒤에 행복이 뒤따라온다고는 보장 할 수 없다.
유명 공연장에서 그토록 원하던 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뤄낸 조가 공연후 허탈해 하던 모습에서
나는 웹툰 두번째 연재를 하며 허탈감에 빠져있던 나를 보았다.
원하던 것은 웹툰 작가가 되는 것 그리고 그 일로 돈을 많이 버는 것. 이었다.
당연히 떼돈을 벌었다거나 한 건아니고, 그냥 첫번째 연재때보다는 많은 돈을 벌었고
두번째 연재작은 좀 더 안정적인 작가생활을 시작했다는 증거이니 당연히 행복해야 했다.
그러나 공황장애가 재발했었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건, 나의 행복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정말 오래도록 바라고 준비하고 노력해서 얻어낸 결과였다.
그래서 더욱 더 허탈했다.
즐거움과 마음의 불꽃이 없는 "22" 와 같은 세월을 꽤 오래 보냈었다.
"22" 에게 동질감을 느낀 관객들도 꽤 있었겠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꿈을 찾아 달려온 길이라 생각하는데 "22"에게 동질감을 느낀다는 게
영화를 보는 동안 조금 창피하기도 했다.
"조" 와 "22" 의 공통점이라면 자신을 아낌없이 표현해 낸다는 것.
내가 가장 힘들어 하는 그 것.
항상 언제나 늘 그들 같은 사람을 부러워했다.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고 무엇에 내가 심취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남의 시선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 마음이 이성을 앞서있는 사람들.
누구도 보지 않는 것처럼 춤출 수 있는 사람들.
나는 초등학교 5학년때까지만 하더라도 쉬는시간에나 친한친구들과 시끄럽게 떠들었지
발표나 무대와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내성적 아이였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때 무슨 생각이었던 것인지 학교축제에서
아버지 선글래스를 끼고 무대의 가장 앞으로 뛰어나가 막춤을 췄었다.
합주실에서는 그토록 경직되더 있던 내가
공연에서는 창피한 줄 모르고 자기 멋대로 소리를 지르고...(다시 생각해도 밴드시절은 낯뜨겁다)
어쨌든 몸을 움직이는 것에 있어 정말 창피해하고 경직되어 있는 내가
관객이 보는 공연장에서 만큼은 시선을 즐기며 신나게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내 안에 벽을 허물고 싶어하는 영혼이 있다는 반증이라 생각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가을단풍이 흔들리는 높은 나무를 올려다보는 장면이었다.
햇살은 눈부시게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고,
단풍나무 씨앗은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마냥 빙글빙글 손위로 떨어졌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있었을 것이다.
눈부신 가을의 하늘 바라보며 삶에 대한 풍요와 감사를 느끼던 순간.
바람은 살갗을 메만지고 낙엽의 향을 잔뜩 머금은 공기는 코로 들어와 가슴에 머물다 입으로 나간다.
그때는 할머니와 함께한 가을 소풍이었고,
친구와 함께했던 수학여행 이었으며,
이혼으로 헤어졌던 엄마손을 잡고 치킨을 먹으러 가던 2차선 도로였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피크닉을 갔을때의 학교 뒷동산이었다.
"조"의 몸에 들어간 "22"는 삶의 환희를 그 순간 온몸으로 느꼈다.
냉소적이던 22가, 감성 충만한 조의 몸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을까?
그럴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왠지 그랬을 것 같았다.
바다를 볼때도 산을 오를때도
누구와 함께 하냐에 따라 마음은 천국이기도 지옥이기도 하다.
그런데 몸을 공유한다는 것.
그것은 화학적인 영역이든, 과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영적인 것이든 영향이 없을리 없다.
이성의 벽을 가득 세운내가
감성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뚝딱하고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경직된 벽을 허물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겠지만,
"조" 와 하나가 되었던 "22" 처럼 누구와 함께 세상을 볼 것인가?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맛과 향을 느낄수 없는 영화속 유세미나(환생을 위한 준비장소 같은 곳) 에 사는 것 처럼
음식을 먹는 내게 필요한 건 명확하다.
음식을, 인연을, 사람을, 기회를, 순간을, 삶을 음미하는 것.
"무엇으로 나는 살아가는가?"
"그리고 행복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결론은 되어주지 못하겠지만
소울은 내게 저 답을
"삶을 음미하기 위해 살아가고, 행복은 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라고 말해주었다.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굳게 닫혀있던 마음을 하나씩 열고 정리해나갈 용기를 가지게 되는 요즘이다.
"변할 수 있다"고 믿음을 가지는 것 보다
"변해도 된다"고 스스로를 토닥여주고 싶은 밤이다.
"나는 변해야만 한다." 가 아니다.
"변할 자격이 있다 나는."
"그리고 당신들도."
디즈니&픽사 <소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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